전시 [인기(人器)_사람그릇], 기획자의 이야기
작성자
- 등록일 24-12-02
- 조회23회
- 이름
본문
<인기, 사람 그릇>은 그런 마음에서 시작된 전시입니다.
완성된 도자기를 보는 대신, 흙이 손을 거쳐 하나의 그릇이 되어 가는 여정을 함께하며 각자의 삶을 잠시 돌아볼 수 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흙이 모양을 갖추고 그 안에 개성이 깃들어가는 과정은 사람의 삶과도 닮아있습니다. 각각의 손길과 시간이 쌓여 도자기가 서로 다른 모습이 되는 것처럼, 우리의 삶도 각기 다른 빛깔과 무늬로 빚어집니다.
삶이 우리를 더 단단하게 하는 순간들처럼, 도자기도 뜨거운 가마 속에서 강해집니다. 가마 속 불길은 서서히 타오르고 천천히 온도가 올라가며, 흙이 단단해지는 그 시간을 기다려줍니다. 이렇게 완성된 도자기는 하나의 완성품이지만, 도자기로서의 여정은 이제 막 시작된 것이기도 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각자의 시간이 쌓여 가며, 우리는 완성과 미완성을 반복하며 자신의 그릇을 채워 갑니다. 완성된 모습이 아닌, 빚어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늘 정답 없는 삶과 마주합니다.
이번 <인기, 사람 그릇> 전시는 도자기라는 물성 너머로 감각을 통해 흙과 빚어가는 여정을 직접 느낄 수 있도록 기획되었습니다.
‘도자기 없는 도자기 전시’라는 독창적인 접근을 통해 조향, 무용, 영상 등 새로운 시도를 통해 도자기의 본질을 감각적으로 전달하고자 합니다. 흙을 향으로, 형태가 되어 가는 모습을 동작으로 표현했습니다. 흙을 만지고, 형태를 만들고, 가마 속에서 단단해지는 그 과정은 어쩌면 우리 자신을 닮아있는지도 모릅니다.
조향사 이정화와 우인영, 그리고 아트라이앵글이 ㈜문화예술복합공간삼구일일과 협업하여, 도자기를 감각적이고 융합적으로 해석하고 표현했습니다.
이 전시는 도자기를 단순한 결과물이 아닌, 우리의 삶을 담아내는 또 하나의 거울로 바라봅니다.
그리고 이제, 한 가지 질문을 남기고자 합니다.
당신이라면, 당신의 그릇에 무엇을 담고 싶으신가요?
이번 전시가 그 답을 찾아가는 여정의 시작이 되기를 바랍니다.
━━━━━━━━━━━━━━━━━━━━━━━━━━━━━━━━━━━
㈜문화예술복합공간삼구일일의 기획전시 [인기(人器)_사람그릇]은 광주의 대표적 문화인 조선백자, 왕실도예의 명맥을 이어가며 작업을 하는 도예가로서, 도자기를 단지 작품으로 대하기보다 작업하면서 담긴 의미를 생각해 보고, 도자기를 삶과 빗대어 생각하고자 하는 태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도자기 없는 도자기 전시'라는 독창적인 접근으로 조향, 무용, 영상과의 협업을 통해 도자기의 본질을 감각적으로 전달하고자 했던 만큼 많은 고민과 회의도 진행하면서 만들어진 전시입니다. 초기 기획의 시작은 ‘도자기를 다른 장르로 표현할 방법은 없을까?’ 하는 고민에서 출발하여 흙에서 도자기를 만드는 과정이 사람이 태어나서 인격을 이루는 과정에 빗대어 표현하고자 하였습니다. 흙이 반죽이 되어 물레 위에서 도공의 손을 만나 형태를 이루고, 장식되는 모습이 사람이 태어나서 성장하고 개성을 찾아가는 과정처럼 보였습니다.
불에 달궈져 구워지는 과정은 사람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담금질이 되고, 어려움과 역경을 딛고 성장하는 모습으로 표현되고, 그로 인해 완성된 도자기는 하나의 인격체이자 새로운 출발점으로 느껴졌습니다.
이와 같은 고민을 전시로 구현하기 위해 많은 사람을 만나고, 함께 이야기 나누고, 생각을 공유하며 전시를 구체화하기 시작했습니다. 불분명한 단어들의 나열이었던 이야기가 각자의 이야기들이 더해지며 풍성해지고, 탄탄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개인적이었던 이야기가 여러 사람을 거치며 공통적인 이야기이자 개별적인 상상이 발현되는 이야기로 발전 되어갔습니다.
도자의 이야기를 다른 분야의 표현 방법으로 설명하기 위해 몇 번의 미팅을 진행했고, 그 과정을 통해 참여하는 작가들 모두 자신의 이야기로 도자기를 표현하고자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만들어갔습니다.
‘흙은 모든 것을 담아낼 수 있다.’라는 재료의 포용력을 전시의 도입으로 여러 종류의 많은 흙을 보여주고, 만질 수 있게 배치하고, ‘오늘도 우리는 우리를 빚고 있다.’라는 행동으로 무용을 통해 성형 과정을 표현하였고, 문양이 새겨지거나, 유약을 입히는 과정을 사람의 옷을 입는 것과 같이 표현하여 천의 질감, 문양으로 표현하였습니다.
뜨겁다고만 생각할 수 있는 가마에 ‘사람, 바람, 불, 우리를 단단하게 하는 것들.’이라는 문구로, 자칫 힘들게 하는 어려움이라는 이미지보다는 우리를 성장할 수 있게 하는 힘이자 꾸준함, 지속적인 끈기를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지나 ‘당신의 그릇에는 무엇을 담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앞선 과정의 결과를 만들 수도 있고,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생각할 수 있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습니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처음 해보는 도전이었지만, 스스로 엄청나게 컸다고 느낄 정도로 어려운 전시였고, 많이 배울 수 있었던 기회였습니다. 한 단어가 생각났을 때, 왜 그 단어를 떠올리게 됐을까 생각해보고 또 생각해보고, 단순히 내 주장이 아닌 각자의 이야기가 상상될 수 있는 연결고리를 만들고 싶었기에 이야기도 많이 하고, 또 많이도 들으러 다녔습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내가 제일 잘하는 것이 어떤 활동이고,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나에 대해 생각해 보고 가다듬을 수 있는 아주 멋진 기회이자 무대였습니다.
하나의 재료, 물건에 대해 단순히 물성만 바라보는 것이 아닌, 그 안에 담긴 의미를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의 계기가 되어, 앞으로도 꾸준히 이 일을 즐기며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으로 이 글을 마무리합니다. 감사합니다.